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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려다 흐름을 잃게 되는 투두리스트의 함정

by 레이어드디 2025. 12. 20.

투두리스트의 함정

투두리스트는 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대표적인 도구입니다. 해야 할 일을 적어두면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고 놓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관리의 관점에서는 투두리스트가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도구가 항상 집중을 돕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순간에는 일을 정리하려고 열어본 투두리스트가 오히려 생각을 흩어놓고 시작하려던 집중의 흐름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투두리스트가 집중을 망치는 순간이 언제인지, 왜 그런 일이 반복되는지, 그리고 집중을 지키기 위해 어떤 기준이 필요한지를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투두리스트를 여는 순간, 집중의 흐름은 왜 끊어질까

투두리스트가 집중을 망치는 첫 번째 지점은, 리스트를 확인하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판단을 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의 일에 막 들어가려던 상태에서 투두리스트를 여는 순간, 화면에는 크고 작은 할 일들이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 금방 끝낼 수 있는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같은 무게로 나열되면 뇌는 즉시 비교와 선택 모드로 전환됩니다.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할지, 다른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 혹시 더 시급한 것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따지게 됩니다. 이 판단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이미 형성되던 집중의 흐름을 빠르게 흔들어 놓습니다. 특히 기획, 글쓰기, 설계처럼 사고의 맥락이 길게 이어져야 하는 작업일수록 이 전환은 치명적입니다. 투두리스트를 잠깐 확인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고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 됩니다. 다시 원래 작업으로 돌아오려면 "어디까지 생각했지?", "다음 단계는 뭐였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끊어진 실마리를 하나하나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이 복원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당한 집중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결국 투두리스트를 여는 행동은 일을 돕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집중을 다시 처음부터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이런 전환이 하루 동안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한 번 두 번은 괜찮아 보이지만, 투두리스트를 열 때마다 판단과 복원이 반복되면 집중은 점점 얕아집니다. 우리는 계속 바쁘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일에 깊이 들어갔다는 감각을 얻기 어려워집니다. 투두리스트는 일을 정리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사용하는 순간과 방식에 따라 집중을 돕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흐름을 끊는 방해물이 되기도 합니다. 투두리스트를 여는 순간 집중이 끊어지는 이유는 그 안에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한 번에 너무 많은 판단을 요구받기 때문입니다.

투두리스트가 불안과 미완료 감각을 키우는 방식

두 번째 문제는 투두리스트가 해야 할 일의 총량을 한꺼번에 드러낼 때 발생합니다. 리스트를 여는 순간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화면 가득 나열되면 뇌는 이를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부담으로 인식합니다. 지금 막 손을 대고 있던 일보다, 아직 남아 있는 일들의 양이 훨씬 크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집중은 자연스럽게 현재의 작업에서 멀어집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한 가지 일에 머무르기보다, 앞으로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떠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한 가지 일에 오래 머무르기가 어렵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다가도 "이거 끝나면 저것도 해야 하는데", "이건 언제 처리하지?"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끼어듭니다. 손은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은 늘 다음 할 일로 이동해 있습니다. 집중은 깊어지지 않고 얕은 상태로 유지되며, 사고의 흐름도 자주 끊깁니다. 투두리스트가 일을 관리하는 도구가 아니라 끝내지 못한 일들을 계속 상기시키는 미완료 목록처럼 작동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쌓인 미완료 감각은 하루가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분명 많은 일을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는 하지 못한 일들만 선명하게 남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바빴는데 남은 게 없다"는 느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특히 일정이 빽빽한 날일수록 이 현상은 더 강해집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투두리스트를 자주 확인하게 되고, 확인할수록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집중은 뒤로 밀리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정리하려고 열었던 투두리스트가 오히려 불안을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할 일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의 총량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만드는 구조로 바뀌는 순간, 투두리스트는 집중을 돕지 못합니다. 집중이 흔들리는 것은 일을 잘못 관리해서가 아니라, 한 번에 너무 많은 '아직 해야 할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중을 지키기 위한 투두리스트 사용 기준

투두리스트가 집중을 망치지 않으려면 관리와 집중의 역할을 분리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하나의 리스트에서 동시에 다루려 하면 집중과 관리가 충돌합니다. 관리에는 전체를 내려다보는 시야가 필요하고 집중에는 의도적으로 시야를 좁히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두 상태를 같은 화면에서 유지하려는 순간, 집중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집중이 필요한 시간에는 지금 할 일만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 집중 목표 하나만 화면에 두고 나머지 할 일들은 보이지 않게 치워두는 것만으로도 판단 부담은 크게 줄어듭니다. 투두리스트는 집중 중에 계속 확인하는 도구가 아니라, 집중 전이나 집중 후에 정리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작업 중 떠오른 다른 할 일은 즉시 처리하려 하지 말고 별도의 메모 공간에 옮겨두는 것이 흐름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결국 투두리스트는 일을 대신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일을 하기 좋은 상태를 만들어주는 보조 수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적어두었는지가 아니라, 언제 리스트를 열고 언제 닫을지를 정하는 기준입니다. 투두리스트가 집중을 망치는 순간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리하려다 흐름을 잃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집중은 모든 할 일을 동시에 바라볼 때가 아니라, 지금 해야 할 한 가지가 분명할 때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