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아침 출근해 컴퓨터 앞에 앉으면 우리는 수많은 '할 일'과 마주합니다. 메일을 확인하고, 메신저에 답장하며,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틈틈이 프로젝트 기획안을 작성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근길에 오를 때면 "오늘 하루 정말 바빴는데, 정작 중요한 일은 하나도 제대로 못한 것 같다"는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느낌은 단순히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바로 반복 업무와 비반복 업무를 구분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에서 생긴 것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동일한 비중으로 처리하려다 보니, 정작 에너지를 쏟아야 할 곳에 쓸 힘이 남아나지 않는 것이죠. 업무 성격을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일의 효율이 달라질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반복 업무와 비반복 업무를 섞어서 관리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낭비
우리는 흔히 투두리스트를 작성하며 모든 업무를 나열합니다. 하지만 그 리스트 안에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일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매일 혹은 주 단위로 발생하는 반복 업무이고, 다른 하나는 창의성과 깊은 고민이 필요한 비반복 업무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처리하면 우리 뇌는 과부하가 걸릴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전에는 이 구분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오전 10시, 가장 머리가 맑고 집중력이 높은 골든 타임에 저는 '기획안 작성'이라는 무거운 비반복 업무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기획안의 서론을 채 쓰기도 전에 고객사의 메일 알림이 울리면 바로 확인하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동료들의 가벼운 메신저 요청도 즉각 응대했죠. 단순한 데이터 입력 업무도 눈에 보이면 "빨리 끝내버리자"는 생각에 집중력이 최고조인 시간에 처리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데이터 입력이나 메일 응대는 금방 끝났지만, 끊겨버린 기획안의 흐름을 다시 잡는 데는 수십 분의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정작 오후가 되어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이면, 미처 끝내지 못한 기획안을 붙잡고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게 되더군요. 반복 업무가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정작 성과를 내야 하는 비반복 업무를 뒷전으로 미룬 셈입니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반복 업무는 낮은 에너지로도 수행 가능하지만, 비반복 업무는 막대한 인지 자원을 소모합니다. 이 두 가지를 같은 선상에 두면,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덜 드는 쉬운 일(반복 업무)을 먼저 선택하게 되고, 중요한 일은 항상 '나중에 할 일'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결국 만성적인 피로와 성취감 저하로 이어집니다.
2. 반복 업무와 비반복 업무를 구분하지 못해 생기는 심리적 혼란과 번아웃
업무 구조의 부재는 단순히 시간 낭비에 그치지 않고 심리적인 고통을 유발합니다. 반복 업무는 특징상 '끝이 없습니다'. 오늘 메일을 다 읽어도 내일이면 다시 쌓이고, 오늘 데이터를 정리해도 내일이면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옵니다. 반면 비반복 업무는 프로젝트의 완성이라는 명확한 종착역이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가장 큰 혼란은 '성취감의 부재'였습니다. 하루에 10건 이상의 메일을 처리하고 단순 자료 입력을 마쳤을 때, 할 일 목록의 체크 박스는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불안했습니다. "내 커리어를 위해 정말 중요한 기획은 진전이 없는데, 나는 그저 소모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반복 업무와 비반복 업무를 구분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요청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기획안을 작성하다가도 메신저 숫자가 뜨면 불안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한때 집중이 필요한 시간에도 메신저 팝업을 꺼두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답장이 늦어 업무 흐름을 방해할까 봐 걱정했죠. 하지만 돌이켜보니 제가 즉각 답장을 한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획기적으로 진전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의 집중력만 조각날 뿐이었죠.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바쁨의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로 중요한 성과는 내지 못하면서 몸만 바쁜 상태, 즉 효율 없는 바쁨에 갇히는 것입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번아웃을 유발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성장이 느껴지지 않을 때, 직장인은 가장 큰 무력감을 느낍니다. 따라서 업무를 성격에 따라 나누는 것은 단순히 스케줄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정신적 에너지를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필수적인 방어 기제입니다.
3. 반복 업무와 비반복 업무의 분리, 효율적인 스케줄링의 시작
결국 저는 업무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제 업무를 리스트업하고, 이를 반복과 비반복으로 철저히 분류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스케줄 앱과 간단한 메모장을 활용해 저만의 '업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습니다.
- 비반복 업무: 하루 중 가장 집중력이 좋은 오전 9시부터 11시 30분까지는 '방해 금지 시간'으로 설정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기획안 작성, 전략 수립 등 깊은 사고가 필요한 일만 수행합니다. 메일이나 메신저는 아예 확인하지 않습니다.
- 반복 업무: 점심 식사 직후나 퇴근 전처럼 에너지가 다소 떨어지는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메일 회신, 데이터 입력, 단순 정산 업무 등은 이 시간에 몰아서 처리합니다.
이렇게 업무를 구분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5시간이 걸려도 마무리하지 못했던 기획안이, 단 2시간의 집중만으로 초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집중력이 깨지지 않으니 사고의 깊이가 달라졌고, 결과물의 퀄리티도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또한, 반복 업무를 '몰아서' 처리하니 오히려 처리 속도가 더 빨라졌습니다. 하나하나 따로 대응할 때보다 일의 맥락이 이어져 효율이 극대화된 것입니다.
이제 저는 퇴근할 때 더 이상 공허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비록 메일함에 처리할 일이 남아있더라도, 오늘 내가 집중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을 끝냈다는 명확한 성취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업무의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 길잡이가 생긴 셈이죠.
여러분도 혹시 끝없는 업무의 굴레에서 지쳐가고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업무 목록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톱니바퀴 같은 일인지, 아니면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도전적인 일인지 구분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