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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맞추는 순간, 마음은 조용히 소모되기 시작한다

by 레이어드디 2025. 12. 16.

기대에 맞추는 순간

우리는 흔히 일을 많이 해서 지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하루를 되짚어보면, 몸을 움직인 시간보다 '남의 눈치를 살피고 기대를 예측하느라' 마음을 쓴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센스 있는 사람', '일 잘하는 동료'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 타인의 기대를 미리 계산하고 움직이는 습관은 우리를 소리 없이 갉아먹습니다. 제가 직장 생활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왜 우리가 타인의 기대에 민감할수록 쉽게 소모되는지, 그리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요청 없는 기대에 스스로 응답할 때 시작되는 마음의 소모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관계적 피로는 상대방의 명확한 '부탁'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기대의 시나리오가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저는 한때 직장에서 소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알잘딱깔센)'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상사가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그가 원할 법한 데이터를 미리 준비하고, 후배들이 어려워할 것 같은 업무를 먼저 가져와 처리하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탕비실의 재활용 쓰레기통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 내 업무가 아님에도 '누군가는 치워야 하는데, 내가 치우면 다들 좋아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금세 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누구도 나에게 그 일을 강요하지 않았기에, 내가 쏟은 정성에 대한 보상이나 인정은 당연히 뒤따르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내가 이렇게까지 배려하는데 왜 몰라줄까?'라는 서운함이 싹텄고, 정작 내 본업에 쏟아야 할 에너지는 이미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기대를 의식하는 순간, 뇌는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립니다. '이렇게 하면 좋아할까?', '저렇게 하면 실망하지 않을까?'라는 수천 번의 판단 과정이 실제 노동보다 훨씬 더 큰 신경학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듭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만 있어도 진이 빠지는 이유는 바로 내 마음이 타인의 보이지 않는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쉼 없이 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일상은 긴장의 연속이 됩니다. 휴식 시간조차 온전히 쉬지 못하고 휴대폰 알림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죠. 타인의 기대를 나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습관은 결국 나를 '타인의 욕망을 처리하는 대행자'로 전락시킵니다. 내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내 성취가 아니라 타인의 만족도에 달려있다면, 그 삶은 결코 평온할 수 없습니다.

2. 모호한 기대는 요청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긴장으로 작동한다

명확한 요청은 응답(Yes)이나 거절(No)이라는 끝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기대는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어디까지가 충분한지, 언제 멈춰야 할지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동료의 기획안을 검토해 주던 시절이 그랬습니다. 단순히 "한번 봐달라"는 가벼운 부탁이었음에도, 저는 상대방이 나에게 '완벽한 피드백'을 기대할 것이라 지레짐작했습니다. 오타 교정은 물론이고 문장 구조를 수정하고, 디자인 요소까지 따로 정리해 넘겨주었습니다. 제 업무 시간의 절반을 남의 일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 사용한 셈입니다.

이렇게 기대를 책임감으로 오해하면 마음은 늘 '비상 대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 상태의 무서운 점은 일이 끝난 뒤에도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드백을 보낸 후에도 '너무 깐깐하게 본 건 아닐까?', '혹시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라며 상대의 반응을 추측하느라 에너지를 계속해서 흘려보냅니다. 종료 지점이 없는 긴장은 만성 피로의 원인이 됩니다. 특히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표정 하나, 말투 한마디에 담긴 보이지 않는 기대를 읽어내려 애씁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내가 읽어낸 상대의 기대 중 상당 부분은 실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상대는 그저 가벼운 도움을 원했을 뿐인데, 내가 스스로 100%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설정한 것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타인이 만든 감옥이 아니라, 내가 만든 '기대의 감옥'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구조를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휴가를 가고 잠을 자도 마음의 허탈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에너지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끝없는 시뮬레이션에서 새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타인의 기대보다 나의 기준에 집중할 때 비로소 회복되는 일상

번아웃의 문턱까지 갔던 저는 결국 나만의 기준을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핵심 가치에 집중하는 전략입니다.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업무의 우선순위를 재정의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기획안을 디테일하게 봐주는 시간 대신, 내 기획안의 논리를 다듬고 퀄리티를 높이는 데 시간을 먼저 할당했습니다. 동료에게 피드백을 줄 때도 '눈에 띄는 큰 부분'만 짚어주는 선에서 멈췄습니다. 처음에는 '불친절해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제가 에너지를 아껴 제 일에 집중하자, 오히려 제 작업물의 성과가 좋아졌고 동료들은 저를 '자기 일 확실히 하면서 중심을 잡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과도한 친절과 배려로 기대를 맞추려 할 때보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행동할 때 관계의 밀도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내가 여유가 있을 때만 기꺼이 하고, 바쁠 때는 보이지 않는 척 넘길 수 있는 용기를 냈습니다. 내가 모든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자,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기대에 응답할 의무가 없습니다. 기대를 알아차리는 것과 그것에 반응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내가 책임져야 할 영역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만약 아니라면, 그 기대는 상대방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괜찮습니다.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아끼는 법은 더 많이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 집중할 때, 역설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지고, 그 빈자리에는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진정한 에너지가 차오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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